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주저리 > 시공현장사진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시공현장사진

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주저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Iris 작성일24-08-14 20:36 조회8회 댓글0건

본문

중국의 엘리트바둑이 온갓 잡박한 문헌에서 바둑은 위기. 박혁등으로 나온다. 위기와 박혁의 문자학적 검토는 기실 중요한건 아니지만 간단 하게 살펴는 보자.圍는 口와 韋의 결합자다. 口는 울타리고 韋는 사람의 발이 서로 대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는 자다. 그러나 금문과 소전에는 보인다. 금문도 넓은 의미에서는 갑골문으로분류 되기는 한다. 설문해자는 지키는 것이라 한다.碁는 갑골 금문 양쪽에 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其가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其는 키를 가르킨다.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를 말한다. 위기가 바둑을 가르키고 상은대에 위기가 있었다는 말은 다소 과장된 말이다. 그러나 바둑은 분명, 상은대 즉 청동기 시대에 있었다.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다음 글을 보자.ㅡ丙子卜貞多子其延學0不購大雨.* 延學口木不購笑.이 기록은 은허갑골각사류찬 은허문자집서 갑골문자집 세권중 한권에서 필자가 뽑아본 것이다.(책의 종류와 페이지까지는 다음 연구자가 찾아 보기 바란다.)위 점사는 갑골문 시대의 정통 오분기법중 5기 무정기로 기원전 9세기에서 10세기쯤의 기록이다.이 글에서 연, 학, 위, 목자를 유의 하고 해석을 보자. 필자의 해석을 크게 믿지는 마시라.ㅡ 병자일에 점에 물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는데 큰 비를 맞지는 안을까요?학교라는 말이 나온다. 믿을 수 없는 말이지만 은허갑골 점사중에 학교라는 말은 분명 있다. 이곳에서 필자의 견해는 뒤로 하고 중국 고문자의 권위자인 이효정과 그의 수제자인 한국의 이병관(공주대 한문학과 ) 교수의 저술속에서 학자의 의미를 살펴 보자.學은 갑골문 금문에 모두 있다. 어린 아이들에게 주역이나 글을 가르키던 곳이다. 그렇다. 금문고림에는 學과 校는 같은 것이다했고 설문은 깨치는 것이다 하고 있다. 배우는 집단 시설이 이미 3천년전에 있었다는 말이고 엘리트바둑이 이 점사는 그것을 증거 한다.많은 아이들이라 했다. 그러니 학교다. 아이들이 모여 학교를 가다가 큰 비를 만나지 않을까요? 묻고 있다. 등교 길이 큰 비를 걱정할 정도라면 학교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던 모양이다. 한 동리의 아이들이 집단으로 학교를 가고 있고, 길이 멀다면 기숙사 생활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대만의 고산족의 고기록에 소년들의 집단 합숙소가 있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다음 기록이다. 갑골점사의 어법은 거의가 이분법이다. 좋을까요. 나쁠까요라는 정과 반을 묻는다.ㅡ 학교에서 口木(위기)으로 웃지는 않겠지요?購는 갑골문에서 만나는 것, 결합 하는 것, 성교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가지고 웃고 떠들지 안을까 걱정 하는 학부모들의 근심이다. 외목이 놀이 기구라면 위는 울타리고 목은 나무이니 바둑 장기 박혁등 일종의 반상 게임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위목이 위기의 원형임은 금방 알수 있다.목(木)은 최초의 바둑알이 돌이 아닌 나무를 작게 다듬어 만든 것임을 말한다. 사실 돌보다는 나무를 다듬어 쓰는 것이 좀더 간편할 것이다. 후대의 중국의 여타 기록에 나무로 만든 바둑알도 보인다. 위목의 의미를 필자가 위기로 견강부회한다면 할 말이 없다.갑골문의 기록은 물경 16만점에 이른다. 은허갑골문의 모든 기록이 취합 되어 만들어진 책자는 7천여 페이지에 이른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록 하나를 찾아 내려면 눈으로 스치듯 읽고 지나가는 데만 일주일은 걸린다. 훑어 보는것만도 그렇다.작년에 있었던 바둑학회의 자료집을 읽었다. 학회가 워낙 일천 하다 보니 거의 타이젬 논단 수준(결코 폄하 하는 것이 아니다.)이다. 아니 타이젬 논단에 올라 오는 글들중에 엘리트바둑이 그것들 보다 나은 것이 훨씬 많을 정도다. 특히 외국인이 발표 하는 논문들이 그렇다. 외국인이기에 발표의 기회를 주었기에그럴것이다 믿는다.갑골문은 사실 정보의 바다다. 갑골문의 집대성은 겨우 1980년대에 와서야 이루어졌기에 그전의 학자들은 정보 접근에 애로가 있었다. 한중일의 바둑사는 거의가 80년 이전에 완성된 것이고 후에 나온 책들도 복사판이 주류여 이런 정보가 채록 되기 힘들었다. 더구나 국내에 갑골문을 연구 하는 학자들이 소수다 보니 그들의 눈에 바둑 기록이 보일리 만무다.누군가 실력있는 학자의 눈에 이 정보가 보여 멋진 바둑사를 쓴다면 기쁘겠다.​1. 바둑의 어머니는 주역이다.고려말 성리학자 목은은 바둑의 신묘한 운용에 대해서는 궁극을 모르겠다 했고 세조는 치받고 꺽고 가두고 전개 하는 것이 오행의 그것과 닯았다 하며 목은의 궁금점에 답했다. 조선의 엘리트들은 바둑의 형국을 빌려 세상 살이를 논했고(지난 6월호 실록으로 본 바둑사 참조) 왕들은 기리를 빌려 국정을 운영 했다. 조선 시대의 바둑 평론가인 조희룡은 바둑속에서 삶의 교훈을 찾아 잠언을 들려 주기도 한다.-잘못 되지 않은 일을 지래 두려워 할 일 아니고 잘못된 것을 보면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한다.(호산외기)조선은 바둑으로 시작 해 바둑으로 끝난 나라다. 성리학의 절정을 구가 하던 조선의 엘리트들이 어찌 보면 한갓 놀이에 불과한 바둑에 심취 하고 권장까지 했던 이유는 바로 바둑이 주역의 오행 사상을 담아 내고 있었던 탓이다.주역은 세상을 상(象)과 수(數)로 본다. 상은 존재 원인의 공간적 이해고 수는 존재 원인의 시간적 이해다. 이 상이 괘수고 수가 역수(歷數)다. 이 상과 수를 도표화 한 것이 바로 엘리트바둑이 하도.낙서인것이다.목은 이색은 그의 목은집의 기기(碁記)속에서 바둑 철학을 설파한바 있다. 동양의 대철학자인 주자는 오행을 이렇게 정리 한다.- 둥근것은 성좌로 역의 실마리인 숫자이니 그 시작이 이곳에서 나왔고 모난것은 땅이니 고을을 나누어 정전(井田) 하는 것을 본딴 것이니 무릇 둥근것은 수이고 모난것을 본딴 것은 문양이다. 이곳에서 복희가 문양을 본 따 역(易)을 지은 것이다.이곳에 바둑판을 내 놓는다 하자. 존재의 원인인 공간적 이해다. 그 위에 바둑알을 차례로 놓는다. 존재의 원인인 시간적 이해다. 이 위에서 상과 수가 서로 혼돈을 이루며 무엇인가를 만드는데 4계절과 24절기와 12벽과 72절후를 나눈다. 19로의 사(四) 방향 361로에 4귀를 더해 365일을 만들고 반복 순행을 해 나간다.하도는 사방을 표현 한다. 주자가 하도를 처음 사방의 측면에 숫자를 배열 했다.4.9.2.3.5.7.8.1.6.492357816중앙의 5를 중심으로 기수와 우수를 사방에 배치 하여 좌우와 경사의 합이 모두 15가 되게 한것이다. 바둑이 처음에는 15줄이었던 이유다(흑백점의 원시적 형태는 7줄이었을것으로 생각 된다.)바둑의 모습이 어느정도 완성 되던 때 바둑판은 15줄이었다. 양한대의 상수학파들이 하도설을 완성 한 것도 이 때이다. 지난 5월말 경주 분황사에서 15줄 바둑판이 발굴 보고가 있었다. 신라시대의 바둑판이 최초로 나온것이다. 이 발굴은 2003년 부터 필자가 기고를 해 오던 15줄설을 확인(?) 하는 계기이자 더욱 확신 하는 자료가 되어 주었다.바둑은 주역의 발전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둑이 중국의 온갓 놀이가 시류에 따라 생성 소멸된것과는 달리 영속성을 갖고 발전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조선의 엘리트들도 바둑의 오락에 취해 있으면서도 바둑이 주역의 속성과 닯은것에 놀라워 했다.그들은 바둑이 엘리트바둑이 여타의 놀이들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다는것을 인식했던 것이다. 오즉 하면 성리학의 비조 대열에 꼽히는 목은이 바둑을 성리학의 도와 견주었을까. 오늘날 주역은 거의 전부가 밝혀 질 정도로 연구가 잘 되어 있다. 주역에는 다음의 다섯가지 방향의 큰 생각이 있다.직관적 사유. 형상적 사유. 논리적 사유. 변증법적 사유. 상수적(하도.낙서) 사유다. 이 자유 하고 생기 발랄한 사유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 낸 것이 주역이고 그걸 가장 시각적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바둑이다. 이 모든 것을 한판의 바둑위에서 볼 수 있다.전광석화 같은 수 보기는 직관이다. 모양을 보고 본질을 보는 파악 하는것은 형상의 분별이고 직관으로 본 수를 수십수나 착오 없이 전개 하는 것은 논리다. 나를 죽여 오히려 상대를 더 죽이는 것은 변증법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살이의 오묘한 진리와 우주자연의 섭리에 부합 하는상수적 사유다.주역을 학문의 중요 과목으로 알고 있던 조선의 엘리트들이 바둑의 속성이 주역과 너무도 닯은 것에 놀라며 아끼고 사랑 했기에 바둑은 조선의 국기(國技)가 될 수 있었다.​2. 박혁 위기의 분석.바둑의 기원은 요순설 하도설등 여러 가지다. 바둑은 공자 맹자 부터 허신(58-147)이 지은 설문해자에 이르기 까지 중국의 고대서(書)속에 심심 찮게 등장 한다. 그러나 바둑의 기록중에 신뢰할 만한 특정은 없다. 바둑을 단순 오락으로 치부 해 온 역사상의 인식이 가져온 문제점이다.바둑의 기원에 관한 궁리는 한국도 매 한가지다. 이런 점에서 금년 명지대학에서 나온 바둑의 기원에 대한 고찰이란 논문이 주목된다(월간 바둑 4월호 소개) 이 논문은 바둑의 기원이 박혁(장기 바둑이 엘리트바둑이 아닌 놀이)에서 유례 되었 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역사상에 등장 하는 공자의 박혁 맹자의 박혁등이 바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혁은 역사상 5백년의 간격을 두고 나타 나는데 설문해자에 (박혁은 위기이다) 보이듯 박혁에서 발전 한 바둑이 비로서 박혁을 대신 하여 오늘날 장기 바둑의 대명사로 인식 되었다는 것이다.바둑이 장기 바둑을 일컷는 말이 아니라면 바둑을 일컷는 최초의 한자어는 위기다. 설문해자에 박혁은 위기라고도 한다 했으나 이곳에서는위기만을 논해 보자. 설문해자는 한자의 성경 같은 책으로 9353자의 당시 통용 한자의 자의(字意)와 상형(象形)을 풀어 놓은 책으로 오늘날 한자의 어원을 추적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책이다.설문해자의 무(武) 자를 보자.무자는 병사가 창을 들고 뛰어 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것이다. 당초의 의도는 병사의 용맹성을 나타낸 문자다. 그러나 이 무자는 좌전에 와서 신중한 모습으로 바뀐다.진나라 왕이 무자는 창(戈)과 그치다(止)가 어우러진 것이니 무사의 본이라 할만 하다 하면서 그리 된다.이 자의가 후대의 각광을 받은 것이다. 설문해자는 경(京)을 목이 잘린 병사의 모습이라 전한다. 경사(京舍)가 고대 군영의 본부라 한 말이 이뜻이다. 그러나 이말도 서울로 바뀐다. 한자의 본래의 뜻도 시간을 두고 바�것을 알 수 있다.圍는 口와 韋가 합해진 말이다. 口는 울타리며 식구라는 공동체를 뜻한다. 韋는 가죽을 다려 놓은 뜻이라고 하지만 원뜻은 여러 사람의 발 모양을 뜻하는 상형문자다. 碁는 其와 石이 합해진 자다.其는 삼태기를 뜻한다. 대나무와 삼나무로 얼기 설기 엮은 삼태기 말이다. 石은 다듬은 돌이다.한자는 상형과 표의라는 함의를 담아 내고 있는 문자이기에 소리 문자와는 다르게 문자속에 엘리트바둑이 실전된 역사를 내포 하고 있어 흥미와 연구의 자료로도 유용 하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바둑이 전석(田石)으로 쓰인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 화랑세기 고려사등에는 바둑이 碁 奕 圍碁로 나온다. 우리의 역사상에등장 하는 박혁은 바둑과 장기를 뜻한다.이런 인식아래서 우리의 조상들이 논어와 맹자의 박혁을 바둑으로 혼동 한것은 잘못이 아니다. 우리말 어원 대사전을 한번 살펴보자(백문식. 삼원문화사)​바둑.중세어 바독이 바둑으로 어형 변화 하여 바둑(바독)을 바닥(面)과 동금어인 받-밭(田)에 독(石 돌)이 합성된 말이다.우리나라 바둑(碁)의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올라 간다. 농경 사회에서 넓은 바닥에 돌로 경계를 삼고 서로간의 땅을 찾이 하던 뜻을 담고 있다. 검은점 횐점이 바둑이란 무뇌를 나타 내기도 한다.바도기 여러 소리어든 혼사내 막다 하듯 하니라(금강경 삼가해본)바독 두미 됴토다(박통사언해본)우리말 어원 대사전을 살피며 다시 바둑을 설문해자의 상형으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바.白은 서쪽이 색이다. 入과 二의 합성이라고도 한다. 白의 대치는 東 색은 청색이다. 북쪽은 검은색이다. 이 인식은 음양오행이 바탕이다.白은 갑골문의 百과 같다. 자형(形)은 日이다. 원뜻은 횐색이 아니라 사람의 엄지 손가락을 뜻한다.으뜸을 말하는 것이다. 횐색은 오행상의 으뜸색이다. 흑백점에서 백은 기수(寄數)고 흑이 우수(遇數)다.白은 貊과 음이 같다. 그러나 집운(集韻. 또다른 중국의 사전)은 전박절을 들어 박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맥이 동이의 다른 표현이고 보면 박.혁을 바둑으로 인식했다 하여 이상 할것이 없다.​둑(독).설문해자는 昏-冥이다로 어두운 뜻을 표현 한다. 혼은 가막하다 검다라는 뜻이고 우리의 고대 어법상 독으로 읽힌다. 검은 설문해자에 黎(검을 려)로 되어 있다. 우리의 고대는 박혁을 白昏 쓰고 바둑으로 인식 하며 발전 한것이다.이런 점을 염두에 엘리트바둑이 두고 위기를 상형문자로 해독을 해 보자.口는 둘레고 울타리며 공동체를 말한다.口안에 여러 사람이 서로 발을 맞대고 (韋)대처 하고 있다.땅을 나누기 위한 전쟁을 한판 하려는 것이다. 그 옆에 바구니가 있다. 전쟁에서 쓸 무기인 돌이 들어 있다. 이 것이 위기의 뜻이다.나는 바둑의 기원을 주역이라 본다. 이 주장은 나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이미 이 주장은 고래로부터 있어 왔다. 문자 상형의 해석으로 위기는 주역과는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인다. 위기는 바둑과 주역이 완전 분리된 이후부터 쓰인 말이기 때문이다.15로 판에서 19로 판으로 변하며 바둑은 주역으로 부터 해방 된다. 혁이 위기로 인식된 시점은 서기 3세기 정도다. 바둑이 주역과 동거를 하던 때는 박혁의 시대다. 김달수(논문의 저자)는 박혁을 분석 하여 박(장기) 혁(바둑)이라던 그동안의 인식이 사실은 박혁이라는 주사위를던져 상대편의 말을 잡는 놀이로 보고 그 박혁이 원시적 형태의 바둑이라 주장 한다.​나는 이 논지가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다만 주사위를 던져 상대편의 말을 잡는 놀이라기 보다는 흑백돌을 던져 길흉을 점치는 점복의 개념으로 그와 의견을 달리 한다.그러나 그의 의견과 나의 견해는 결국 같은 말이다. 놀이와 점복의 차이는 연구를 통해 극복 될 수 있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사실 한국 바둑은 전문 역사 학자들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분야다. 한국의 민속을 연구한 논문들이 수백편이 넘어도 바둑의 연구는 거의 백지 였다. 이런 과정에 바둑사의 연구의 필요성이 나타나면서 철학과 문화사적 측면에서 몇몇 학자가 관심을 갖기 시작 했고 대학에서 정식 성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바둑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과 엘리트바둑이 연구가 시급 하다 하겠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fhoy.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TEL. 031-544-6222 FAX. 031-544-6464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죽엽산로 86
대표:장금 사업자등록번호:107-46-99627 개인정보관리책임자:장금배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